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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삼국사기라는 우물 안에서 벗어나기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고구려사략과 광개토왕릉비 기록에 나타난 분명한 역사 인정해야
삼국사기가 기록하지 않은 고구려의 새역사...존재하는 기록을 봐야!

[더뉴스=김재봉 선임기자] 한국의 조선(고조선)에서 삼국시대 역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틀 안에 갇혀 있고, 화려한 귀족문화와 황제국가를 표방했던 고려역사는 고려를 멸망시킨 후기조선(조선)에서 편찬한 ‘고려사’ 안에 갇혀 있다.

더욱이 우리의 역사임이 틀림없는 발해사는 학교 교육에서 2페이지 이내에서 끝나고, 대중을 위한 책조차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석연.정재수 공저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출판사 논형

헌법학자 이석연 변호사와 역사칼럼니스트 정재수 작가 공저로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출판사 ‘논형’에서 나왔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역사는 모두 지우자”고 말한다.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갇혀 있지 않고, 일본 왕실도서관(서릉부)에서 필사해온 ‘고구려사략’의 기록을 참조했다.

남당 박창화 선생

‘고구려사략’은 남당(南堂) 박창화(朴昌和.1889 ~ 1962) 선생이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필사해온 자료다. ‘고구려사략’에는 ‘삼국사기’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의 7개 정복사업이 기록되어 있고, 비문에 기록된 내용보다 더 상세하게 전쟁에 참전한 장수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되고 있다.

이석연·정재수 두 저자는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출판을 위해 삼국사기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서를 참조해 반영했다.

고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동아시아는 조공무역이 성행했다. 삼국사기는 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 왕조에 조공(47회)을 바쳤다고 기록한 반면, ‘고구려사략’에는 백제, 신라, 가야, 일본(왜) 등에서 고구려에 공물을 바쳤다는 래조기록(65회)이 남아 있다.

고구려 최대전성기인 광개토왕과 장수왕에 대한 기록인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이석연 변호사가 수차례에 걸친 중국 집안의 광개토왕릉비를 비롯한 관련 유적지와 유물을 찾아 답사했고, 이로 인해 고구려 시조 추모왕(중국에서 ‘주몽’으로 이름을 붙임)에서 고구려가 고대국가의 기틀을 구축하는 데 중심역할을 한 3대 왕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책 내용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삼국시대부터 후기조선(조선)에서 발생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까지의 전쟁 개념은 전 국토를 방어하는 개념이 아닌, 성을 위주로 한 전략거점을 집중하여 방어하고, 나머지 지역은 유사시 방치하는 형태의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참조 : 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을 위하여 : 전쟁의 발견 / 이희진 지음)

특히 고구려 최전성기를 이끈 광개토왕과 장수왕을 온전히 이해하기 이해서는 고대 전쟁사의 개념과 변화를 알아야 한다. 또한 삼국사기와 일제강점기에 의해 축소되고 왜곡된 ‘한사군’의 위치와 대동강 유역의 평양뿐만 아니라, 만주와 중국 여러 곳에 존재했던 지명인 ‘평양’에 대한 개념 정립도 필요하다. 이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한나라와 조선(고조선), 그리고 한사군의 논쟁부터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했다는 내용까지 역사 기록 전체를 180도 바꿀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정복군주인 광개토왕은 18세에 즉위(391년)해 21년을 통치하고 412년 39세에 사망하고, 장수왕은 19세에 즉위해 80년을 통치하고 491년 98세에 사망해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시기는 100년간 이어졌다.

책은 고구려 정복군주 광개토왕의 기록부터 시작한다. ‘제1장 광개토왕’을 들어가기 전 이석연 변호사의 ‘광개토왕릉비와 고대사의 재조명’에 대한 논고가 수록되어 있다. 이석연 변호사는 논고를 통해서 광개토왕릉비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광개토왕릉비 이후 기록되는 중국 고대사(진서, 송서, 양서, 위서, 수서, 구당서, 신당서)와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일본서기, 속일본기, 고사기’ 가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위치를 설명한다. 특히 일본서기(正史) 고사기(일본 천황가의 가계를 꾸민 역사서)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편집됐다는 이야기가 있다.(참조 : 일본서기 / 성은구 역주 / 고려원 출)

이석연(사진 앞) 정재수(사진 뒤) 두 저자 <사진 정재수 작가 SNS>

이석연 변호사가 논고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핵심 키워드는 ‘중국세계관’이 아닌, ‘고구려세계관’으로 바라보는 고구려사다. 광개토왕릉비는 중원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역사 세계관의 중심을 조선(고조선)의 옛 영토에 두고 ‘비려, 숙려, 동부여’를 포함해 백제, 신라, 가야, 왜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삼국사기 김부식이 말한 조공의 주체도 중국의 왕조가 아닌, 고구려가 중심이 된다.

이러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정반대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고대 전쟁사의 민얼굴을 봐야 한다. 전쟁에서 승패가 나면 승자는 패자에게서 약탈과 파괴, 특히 국가 상징적인 건축물의 파괴(방화)와 기록문서들의 파괴가 뒤따랐다. 신라출신의 김부식이 고구려사와 백제사를 신라의 관점에서 삼국사기를 기록했음을 추측하고도 남는 부분이다.

어떤 역사학자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신라가 아닌, 결국 고구려사가 이어진 것이다. 고구려 멸망 15년 후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거대제국을 건설했고, 신라와 발해 남북국시대 이후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임을 알리며 건국했고, 조선은 결국 고려를 이은 국가가 아니냐”라고 말했다.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이병도를 시작으로 식민사학이란 이름으로 나약한 토끼로 변하고, 실증사학이란 이름으로 고구려 태조왕 이전의 기록은 신화로 치부하며 실제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광개토왕릉비의 기록도 애써 외면했던 김부식과 일제강점기 도굴꾼으로 시작한 이병도 사단에 의해 한국의 고대사는 삼국사기와 일제가 만든 식민사학이란 우물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이석연 변호사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의미를 굳이 축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중원의 특성상 대부분 이민족이 중국에 동화되었으며, 고구려가 통일하거나 신라가 삼국통일 후 당나라를 물리치고 중원까지 진출했다면, ‘고려성’ 또는 ‘조선성’으로 중국의 성으로 전락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천제지자(天帝之者, 天子), 황천지자(皇天之者)로 기록된 고구려 시조 추모왕, 고구려인에 의해 고구려 역사관점에서 기록된 광개토왕릉비 기록을 외면하고, 중원사대주의에 입각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만 고집하고, 일제 식민사학의 앞잡이 이병도 사단의 강단사학에 의해 한없이 왜곡 축소된 역사가 正史라고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학계, 나머지는 야사(野史)라고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한국 사학계는 개혁되어져야 한다.

책은 광개토왕릉비와 고구려사략 기록의 일체성을 강조한다.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이 고구려사략에 더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삼국사기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고구려의 역사적 사실을 하나씩 소개한다.

한국인 중 많은 사람이 고구려사에서 아쉬워하는 부분이 왜 장수왕은 국내성을 버리고 대동강유역(현재는 정설로 받아들여진) 평양으로 수도를 남하해 천도한 부분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라·백제와의 관계를 고려한다 해도 대륙을 호령하고 정복군주이던 광개토왕의 뒤를 이어 중국을 도모했으면 하는 속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80년을 제위에 있었던 장수왕이지만, 평양천도는 장수왕 역사의 주요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5도 체제의 고구려 수도’를 소개하고 있다. 후에 요양으로 알려진 평양성(요동지역에 위치)은 북도 위나암성, 남도 환도성, 서도 요녕성 부신, 동도 홀승골성과 함께 고구려의 5도에 포함된다. 고구려의 5도를 본받아 발해는 5경 체제를 구축했다.

장수왕은 위나암성에서 즉위했다. 고국원왕 이후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왕이 주로 기거한 수도가 위나암성이다. 책에서는 장수왕이 대동강유역 평양으로 천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장수왕이 등극하기 전 천익(天益)의 2년간 보위찬탈과 반란군 진압 등 다양한 원인과 이유를 예로 들고 있다.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고구려 최전성기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중심 인물이지만, 주변국과 관련된 사건들도 나타난다. 특히 백제 동성왕에 대한 기록에서 대륙백제의 역사가 언급되고 있다.

이 외에도 수성군주로만 알려진 장수왕이 정복군주임을 말하고 있다. 장수왕의 정복사업 핵심은 “천하의 으뜸국가 고구려의 제국화 실현을 위해 대외정책 4대 원칙 중 근자공지(近者攻之 ; 가까이 있는 자는 공격한다)”를 적용했음을 소개한다.

이석연 변호사·정재수 작가 공저인 “새로 쓰는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중원 사대주의에 입각해 고구려사를 축소왜곡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만 고집할 것인가? 더 나아가 일제와 친일파 이병도가 만든 식민사학만 정사(正史)라고 받아들여 분명히 존재하고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광개토왕릉비, 고구려사략, 자국의 역사를 부풀리기로 유명한 중국 고대사와 자국의 역사를 유리한 부분으로 편집한 일본 고대사에도 나타난 기록을 언제까지 야사(野史)라고 비하하면서 ‘한빠(한단고기 - '桓檀古記 환단고기'에 빠진 사람들)’라고 치부할 것인지 묻고 있다.

[작가소개]

이석연 헌법학자, 법학박사(서울대), 前 법제처장.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헌법포럼’ 대표, ‘책 권하는 사회운동본부’ 대표.

저서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 『사마천의 사기 산책』,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 『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함께 길을 가다』(공저), 『누구나 인생을 알지만 누구도 인생을 모른다』 등과 헌법 관련하여 『헌법 등대지기』, 『헌법과 반헌법』, 『헌법은 상식이다』, 『헌법소송의 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정재수 역사 작가, 역사 칼럼니스트. 백제 곤지왕 연구가.

저서는 소설 『곤지대왕』(상,하), 『백제와 곤지왕』(상,하)과 고대사 관련하여 ‘삼국사기 유리창을 깨다’ 시리즈인 『고구려 역사의 부활』, 『백제 역사의 통곡』, 『신라 역사의 명암』 등이 있다.

김재봉 선임기자  kimjaib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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