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수의 고구려 오디세이] 3. 시조 주몽의 이름에 얽힌 비밀

주몽의 또 다른 이름 추모와 상해

  • Editor. 정재수 역사작가
  • 입력 2022.10.29 22:23
  • 수정 2022.10.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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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 역사작가
정재수 역사작가

[더뉴스=정재수 역사작가] 고구려 시조의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삼국사기』 설명에 따르면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여의 속어이다. 현대 우리 속어에 ‘제비’가 있다. 여성을 잘 꼬시는 얍삽한 남성을 빗대어 이르는 비칭이다. 마찬가지로 주몽은 당시 부여 사회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모두 주몽이다. 『삼국사기』는 주몽의 또 다른 이름도 소개한다. ‘추모(鄒牟)’ 또는 ‘상해(象解)’이다. 둘 중의 하나가 실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추모, 북방민족의 왕호 선우

먼저 추모(鄒牟)이다. 《광개토왕릉비》도 주몽이 아닌 추모로 쓴다. 북방민족인 흉노는 ‘선우(單于)’라는 왕호를 쓴다. 선우는 ‘천자(天子-하늘의 아들)’의 뜻이다.

그런데 『유기추모경』(남당필사본)은 선우와 추모가 같다고 설명한다. 당시 여러 신하가 선우에 ‘大’자를 붙여 ‘대선우’라 칭할 것을 건의하자, 주몽은 “선우는 곧 추모이다. 같은 말이며 글자만 다를 뿐이다. 선우는 하늘(天)로 여김이고, 추모는 신(神)으로 여김이다. 신이 곧 하늘이다. 어찌 선우라야만 된단 말이냐?[單于卽芻牟也 同語而異字 彼以為天此以為神 神卽天也 何必單于然後可乎]”고 반문한다. 추모와 선우는 글자만 다를 뿐 같은 말이라는 해석이다.

추모는 선우와 마찬가지로 북방민족의 지도자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선우는 ‘하늘오 여김(爲天)’이고 추모는 ‘신으로 여김(爲神)’이다.

추모는 고구려 건국시조에게만 붙여진 특별 칭호이다. 물론 훗날 시조의 칭호가 시조의 이름으로 변화한다.

무용총 수렵도(길림 집안), 天子單于’명문 와당(몽골) [필자 제공]
무용총 수렵도(길림 집안), 天子單于’명문 와당(몽골) [필자 제공]

다음은 상해(象解)이다. 『삼국사기』 건국신화에 따르면 주몽의 생부는 북부여 건국시조 해모수(解慕漱)를 자칭(自稱)한 인물이다.[自稱天帝子解慕漱] 『태백일사』에는 북부여 왕족출신 옥저후(沃沮侯) 불리지(弗離支)로 나온다.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고리군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아들이다.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로로 봉함을 받았다. 불리지는 일찍이 서압록(요하)을 지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장가들어 고주몽을 낳았다.[槀離郡王高辰解慕漱之二子也 沃沮侯弗離支高辰之孫也 皆以討賊滿功得封也 弗離支嘗過西鴨綠 遇河伯女柳花 悅而娶之生高朱蒙]’

주몽의 생모는 유화(柳花)부인이다. 유화부인은 남편 불리지가 사망하자 주몽을 임신한 상태에서 동부여 금와왕에게 일신을 의탁(재가)한다. 이때 주몽이 태어나자 금와왕은 양자로 삼으며 상해(象解)의 이름을 지어준다. 『유기추모경』 기록이다. ‘금와왕이 크게 기뻐하며 (추모를) 아들로 삼고 이름을 상해라 지으니 해(日)와 같다는 뜻이다.[蛙王大喜 取之為子 名以象解 如日之義]’. 상해는 밝고 둥근 ‘해(태양)의 형상’을 가리킨다. 해(解)는 생부 해모수의 성씨이며 또한 태양(日)을 뜻하는 우리말 ‘해’이기도 한다.

상해는 주몽의 본명이다. 해(태양) 자체를 말하며 북부여 왕족(해씨)의 직계 혈통을 강조한 이름이다.

『유기추모경』의 또 다른 해석

그런데 『유기추모경』은 주몽을 다른 각도로 설명한다. 단순히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여의 속어가 아니라고 소개한다. 추모가 자신의 이름 주몽을 해석한 대목이다. “짐은 해시(亥時)에 태어났고 하늘은 자시(子時)에 열린다. 날이 새려면 그 산은 검은 빛(玄蒙)으로 휩싸이니 바로 전욱(顓頊)이고 날이 밝으려면 그 산은 자색 빛(紫蒙)으로 휩싸이니 바로 언황(偃皇)이다. 날이 다시금 훤해지면 그 산은 붉은 빛(朱蒙)으로 휩싸이게 되니 짐의 징조이다. 응당 추모(芻牟)를 주몽(朱蒙)으로 하고 동명(東明)을 연호로 삼음이 좋겠다.[朕生于亥而天開于子 日之将曙也 其山玄蒙顓頊是也 日之將明也 其山紫蒙偃皇是也 日之初明也 其山朱蒙乃朕之兆也 當以芻牟為朱蒙 而以東明為年號 可也]”

주몽은 ‘날이 밝으면 태양이 온 산을 비추는 것’을 말한다. 태양이 현몽(玄蒙)에서 자몽(紫蒙)을 거쳐 주몽(朱蒙)으로 점차 밝아짐을 뜻하는 것으로 추모가 전욱(顓頊)과 서언왕(徐偃)의 계보를 이어받아 북방을 다스린다는 뜻이기도 한다. 주몽의 태양은 아직 뜨지 않은 전욱의 태양(玄蒙), 이제 막 뜨려는 서언왕의 태양(紫蒙)이 아닌 중천에 높이 솟은 최고의 태양(朱蒙)이다.

승자가 선택한 고구려 시조 이름

그렇다면 『삼국사기』는 추모와 상해를 놔두고 굳이 흔한 말인 주몽을 썼을까? 『삼국사기』 원사료는 삼한일통(*통일신라) 시기 편찬한 『(구)삼국사』가 기초이다. 『(구)삼국사』는 한반도의 최종 승자인 신라인이 정리한 삼국역사다. 승자는 역사기록에서도 여전히 승자이다. 패자인 고구려 시조의 여러 이름 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록화는 것도 승자의 몫이다. 물론 고구려인 스스로 시조의 다양한 이름을 함께 사용하였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주몽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몽은 별명이며 상해가 본명이다. 추모는 건국시조 왕의 특별 칭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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