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복지 사각 ‘잇단 극단 참극’, 두텁고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 Editor. THE NEWS
  • 입력 2022.11.28 16:42
  • 수정 2023.06.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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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THE NEWS] 서울 신촌의 좁은 셋방에서 65세 어머니와 36세의 젊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관문엔 5개월 이상 체납한 전기료 독촉장이 붙어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돌아가신 모녀(母女)는 건강보험료와 전기요금 등 제 공과금, 월세를 연체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해 사회복지 분야 예산만 217조7,000억 원을 쓰는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 일컫는 것이 무색하다. 이들 모녀는 올해 두 차례 위기가구로 확인되고도 사는 곳이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달라 지원 대상에서 누락(漏落)돼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지난 8월 “월세가 늦어져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비극과 판박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공교롭게도 신촌 모녀의 시신이 발견된 지난 11월 23일은 정부가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그 대책을 내놓기 하루 전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정부는 지난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구축하여 ‘위기의심가구’를 발굴하고 직접 찾아가 상담‧지원하는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시스템의 허점 사이로 그동안 여러 차례 엿보인 ‘비극의 전조’를 안이하게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2018년 ‘증평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봉천동 모자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창신동 모자 사망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판박이처럼 반복됐지만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했다.

그러다가 지난 8월 21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난치병에 시달리고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다르고, 연락처 정보가 없고 소재 파악이 어려워 추가적인 조사와 상담 등 후속 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지난 11월 24일 보완책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집이 비어 있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위기가구원 1만7,429명에 대해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소재를 신속히 파악한다는 내용이다. 똑같은 판박이 비극이 계속 반복되는데도 굼뜨다 수원 세 모녀 비극이 발생한 지 3개월이나 지나 내놓은 늑장 대책이어서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신촌 모녀 비극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부터 올해 7월까지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대상자 446만여 명을 발굴했지만, 이 중 58%에 달하는 260만여 명이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히,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자료에 의하면 이 기간 연락 두절로 인해 정부 조사가 종결된 사례가 무려 3만2,906건이나 되었는데, 신촌의 모녀도 여기에 포함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공백을 서둘러 막아야만 한다. 위기가구를 추적하고 보살피는 복지 전담 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빈곤층을 지원할 촘촘하고 두터우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신촌 모녀가 갑자기 사라진 건 결코 아니다. 3년간 집을 네 번 옮겨 다니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동안 올해 7월 기준으로 건강보험료(14개월), 통신비(6개월), 금융 연체(7개월) 등으로 미납 고지서를 통해 꾸준히 구조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찾아가는 복지 행정’을 약속하고도 위기 징후를 감지하는 정부의 정보망은 좁고 성글어 구조 요청으로까지는 연결되지 못했다.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은 발굴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앞으로는 위기가구를 발굴하는데 질병, 채무, 고용보험, 수도·가스요금 체납 정보 등을 함께 활용하기로 하는 등 위기가구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를 기존 34종에서 44종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한 세대원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기가구를 발굴의 실효성을 높이기로 했다. 의료사회복지사, 집배원 등을 활용하는 신고·알림 체계를 구축하는 등 지자체와 민간기관 간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가 서로 불일치한 경우 관련 정보를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 연계하고 실거주지에서 긴급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침을 개정키로 했다. 하지만 시행 시점은 내년 하반기다. 경기 침체로 한계 상황에 이른 가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데도 굼뜬 거북이 행정으로 절박한 구조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알아듣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2개월마다 건강보험 체납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방문 조사 등을 통해 복지 대상자를 발굴한다. 이 과정에서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을 때는 ‘비대상자’로 분류하고 재차 소재지 파악에 나선다. 이때도 소재지 파악이 되지 않으면 “거주지가 불분명해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공고하고, 이후 1년이 지나도 상황이 진전되지 않으면 ‘거주불명자’로 등록돼 주민등록지가 주민센터로 바뀌고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거주불명자’ 명단에 포함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거주불명자 수는 무려 24만4,575명이나 된다. 거주지가 5년 이상 불분명한 장기 ‘거주불명자’만도 15만 명에 이른다.

신촌 모녀도, 수원 세 모녀도, 송파 세 모녀도 동네 주민들은 “본 적이 거의 없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아무리 복지 행정망을 촘촘히 짠다고 하더라도 인근 주민과 이웃의 무관심으로는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나 지역 정보에 정통한 통·반장 등이 인적 안전망이 된다면 숨어 있는 위기의 이웃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유형의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다가적이고 다층적인 대책을 계속해서 지속 보완해야 한다.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과 예산도 충분히 확보하고 전문성을 높여나가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발굴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발굴 후 회복을 적극 지원하고, 빈곤층이 위기가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에 더욱더 큰 관심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

지난 4월 22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전해진 한 모자(母子)의 비극적인 소식은 우리 사회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낡은 주택에는 곳곳에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 있었다. 이곳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됐다. 모자는 6개월 동안 전기요금을 납부도 하지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하지만 낡은 집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다행히 이번에 낡은 주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서 탈락했던 사례가 재연되는 걸 막기 위해 재산 기준도 완화한다. 긴급한 상황에선 경찰과 소방의 협조를 받아 강제로 문을 열도록 허용하고 개문 후 수리비 등 보상 문제도 개선한다. 전국의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전담 공무원 수는 지난해 기준 1만1,813명에 불과하다. 공무원 1명이 담당하는 위기가구는 평균 100곳이 훨씬 넘는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업무 환경, 과업, 인력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거쳐 적정 인력 운용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15.3%에 이른다. 이는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위에 따라 줄을 세워 놓고 딱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물론 상대적 빈곤율은 2014년 18.2%에서 8년 동안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OECD 평균이 11.8%이고 복지 선진국의 경우 5∼10%인 점을 감안한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런데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중심축인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 이하면 생계 급여, 40% 이하면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월 27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총수급자는 164만 가구, 236만 명에 이르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6%에 달한다. 이는 제도가 시행된 2000년 이후 역대 최다 규모다. 따라서 상대적 빈곤층 15.3%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4.6%를 뺀 나머지 10.7%는 극심한 생활고에서 또 다른 신촌 두 모녀나 수원 세 모녀나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이 재연될 소지를 안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에 진한 먹구름이 엄습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경제는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의 ‘트리플(Triple) 상승’에 더하여 증시 폭락과 8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지고 레고랜드에 이은 보험사발 자금경색 등 최악의 경제위기 쓰나미가 밀어닥치면서 가계 빚 시한폭탄의 시계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1,869조4,000억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자 만성질환이다. 이렇듯 올해는 유례없이 혹독한 경제 한파가 예고된 춥고도 험한 겨울이 오고 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질수록 취약계층인 위기가구들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밑바닥 경기가 싸늘하게 냉기를 더하고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는데 내년에는 그 여파가 더 확산돼 취약계층인 위기가구들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매우 크다. 이럴 때일수록 온정의 손길들이 그립다. 사랑의 온도탑 온도계가 뜨겁게 올라가야만 한다. 더욱이 위기가구에는 더 가혹고 더 혹독한 겨울일 수밖에 없다. 빚 독촉장만 남기고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선택하는 이웃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꺼져가는 삶의 의지들을 따뜻하게 살려내길 우리 사회는 간절히 소망한다. 이것은 정부가 취약계층 보호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보다 두터운 복지정책을 추진해 나가야만 하는 당연한 이유이자 보다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만 하는 당위적 명분이다.

[박근종 칼럼니스트] 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을 역임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더뉴스 논설 및 사설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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