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뉴스=칼럼] 나는 왜 아이폰을 사용하나?

국내 휴대폰 제조사와 이통사의 짝짝꿍, 국내 소비자는 호갱님?

  • Editor. 김재봉 기자
  • 입력 2015.11.12 18:33
  • 수정 2024.01.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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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칼럼] 나는 1993년 영국에서 5년간 모토롤라 5200 인터내셔널 모델을 보다폰이란 통신사(GSM방식)를 이용해 사용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휴대폰이 100~300파운드(당시 1파운드 약 1,200원 수준) 이내에 구매가 가능했고, 휴대폰 사용은 기본요금 없이 각자 사용한 통화량 만큼 매월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97년 여름, 한국으로 잠시 들어올 때 한국에서도 GSM방식의 휴대폰이 곧 들어온다고 해서 사용하던 모토롤라 5200 인터내셔널 모델을 들고 왔다.

외국에서는 사은품이던 애니콜, 한국에서는 120만원 넘어

당시 한국은 휴대폰이 상용화되기 전이었으며, 잠시 후 안테나 근처에 가야 통화가 가능했던 씨티폰이 등장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PCS폰이 등장했다. 당시 SKT를 제외하고 나머지 통신사는 PCS폰이었다.

한국에서도 나는 삼성, 엘지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가능한 모토롤라, 노키아, 에릭슨 등의 제품을 사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과 엘지가 해외에서 저질러온 일들을 알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 애니콜이 그랬다.

내가 5년간 살던 영국에서 삼성 애니콜은 수준이하의 휴대폰이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소비자들의 선택이 워낙에 없으니 당시 대형마트에서 100파운드 이상의 물건을 구매하면 상품으로 끼워주는 제품이었다.

그래도 영국 소비자들은 삼성 애니콜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영국으로 갓 건너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관이었다. 한국에서는 휴대폰을 가입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물건 사면 거져 주는 삼성 애니콜이 12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그냥 공짜 폰도 아니고 대형마트에서 물건 많이 사면 사은품으로 나눠주는 휴대폰이 한국에서는 120만원 넘게 팔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갓 건너온 사람들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그나마 많이 저렴해져서 120만원이란다. 그 전에는 2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해외 판매는 좋은 기능에 저가판매, 한국 판매는 알맹이 뺀 기능에 초고가 판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삼성, 엘지, 팬텍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삼성과 엘지가 괘씸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삼성의 잘못이 컸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3G를 출시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를 하고 있을 때 삼성과 엘지는 일명 터치폰(피쳐폰)을 80~90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삼성과 엘지는 통신사들과 결탁해 피쳐폰에 와이파이(WiFi)기능을 빼고, GPS기능을 빼고 판매했다.

해외 수출품에는 와아파이 기능과 GPS기능을 모두 탑재해 판매하면서 국내에서만 이 두 기능을 빼고 팔아 이용자들이 막대한 데이터 요금을 납부하도록 했다. 간혹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외국인들이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것은 먼나라 이야기였다.

이때 한국에서는 부모와 아이들의 싸움의 주된 이유는 자녀 휴대폰의 막대한 데이터 이용요금이었다. 오죽하면 뉴스에 종종 보도될 정도로 자녀들의 100만원, 200만원이 넘는 데이터 요금은 사회적인 문제였다. 10만원, 20만원, 30만원의 데이터 요금은 적은편에 속했다. 이 모든 일들이 삼성과 엘지 등 휴대폰 제조사가 통신사들과 짜고 와이파이 기능과 GPS 기능을 휴대폰에 탑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었다.

무료사용 가능한 와이파이 막은 위피  

한국은 2001년 7월 14일 ‘한국무선인터넷표준포럼’을 개최하고 WIPI(위피, wifi(와이파이) 아님)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위피는 휴대폰 제조사마다 각기 다른 인터넷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던 것을 통합된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WIPI(위피)를 통해 이동통신사의 표준플랫폼으로 통합되자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은 개발비용을 많이 절약하고, 한 통신사에서 만든 인터넷플랫폼을 다른 모든 통신사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2005년 4월 1일 한국정부는 이동통신 휴대폰 단말기에 WIPI 탑재를 의무화 했다. WIPI탑재 강제의무화는 블랙베리나 아이폰 등의 국내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었다. 여러 진통을 통해 PDA는 휴대폰에서 제외해 2008년 5월 WIPI 의무탑재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RIM사의 블랙베리가 제외 적용됐다.

한국정부의 WIPI 강제의무조항은 애플이 아이폰 3G를 2007년 출시하면서 처음부터 한국을 발매국가 제외로 돌리는 원인이기도 했다. 아이폰 3GS 한국출시를 가로막는 최대 장벽도 WIPI였다.

한국에 스마트폰 시대를 연것은 결국 애플의 아이폰   

한국에 휴대폰 일대혁명은 삼성과 엘지에 의해서 발생하지 않았다. 한국시장에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무시했던 애플의 아이폰 3GS로 한국의 휴대폰 시장과 통신사 정책은 완전히 환골 탈퇴한다. 애플의 아이폰은 한국정부가 강제한 WIPI를 결국 2009년 4월에 의무조항에서 삭제하도록 했다.

삼성과 KT, SKT, LGT는 잠정적으로 스마트폰 무시정책을 펼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KT, SKT, LGT는 애플의 아이폰 3GS를 출시하지 않겠다고 협의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한다. 휴대폰 시장 2위인 KT가 아이폰 3GS를 전격적으로 출시하면서 1위인 SKT 자리를 넘볼 생각을 한 것이다.

2009년 9월부터 무선인터넷(wifi, 와이파이) 협상에 급진전이 일어나 애플의 아이폰 3GS는 드디어 11월 22일 예약신청을 받고, 11월 28일 한국에 공식 출시를 한다. KT는 이통사 3사의 합의를 파기하고 홀로 애플의 아이폰 3GS를 출시한다. 그때만 해도 한국의 여론은 애플의 아이폰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기를 끌어도 한국은 소비자 패턴이 달라 성공하지 못하고 모토롤라와 노키아 등의 전철을 밟아 곧 물러날 것이란 소식을 쏟아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국인들은 애플의 아이폰 3GS로 몰렸다. 다급해진 삼성은 부랴부랴 조악한 옴니아II란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삼성이 조급하게 출시한 옴니아II는 문제덩어리었다. DMB가 된다는 것을 무기로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지만 삼성 옴니아II는 어플리케이션이 많지도 않았고 작동중 오류가 많았다. 국산품 사용이란 애국심 마케팅을 펼쳤지만 옴니아II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애플의 아이폰 3GS는 출시 전 예약자만 4~6만 명이 넘었다. 아이폰 3GS는 출시 10일 만에 10만대를 돌파한다. 특히 SKT에서 KT로 이동한 가입자가 많았다. 다급해진 SKT는 아이폰으로 인한 이탈자를 막기 위해 2년간 지속적으로 아이폰을 출시할 것이란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흘렸다.

스마트폰 무시전략을 구사했던 국내 제조사와 통신사에 화가난 소비자들   

아이폰은 2010년 5월 판매량 70만대를 돌파했다. 50만대에서 60만대까지 10만대를 판매하는 기간은 27일 걸렸으나, 60만대에서 70만대 판매는 25일이 걸렸다. 판매량 증가속도가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KT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없었지만 아이폰 판매량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꾸준히 증가했고, 삼성 옴니아II의 성능에 실망한 영향도 아이폰 판매량 증가에 한몫 했다.

2010년 10월에 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한 아이폰은 2010년 11월 총가입자 수 160만 명을, 2011년 1월 23일 아이폰 4가 나오면서 200만대를 돌파했다. 아이폰 매출실적에 힘입어 애플코리아 매출은 2009년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한 1조5000억 원~2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삼성의 헛발질은 갤럭시1과 2까지 이어진다. 아이폰의 공습에 정신을 잃은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독촉과 채찍질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4가 출시되는 시점까지 이름만 스마트폰 이었다. KT의 배신(?)으로 삼성은 SKT에만 갤럭시를 출시하는 정책을 펼쳤다. 삼성과 KT의 불화를 초래한 아이폰은 이후에도 삼성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아이폰 도입한 KT는 삼성의 박해를 받아   

스마트폰 선호도 조사에서 삼성은 애플에 크게 떨어져 굴욕을 당했다. 삼성은 각종 스마트폰 출시에서 KT를 제외시키고,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시켰다. 삼성은 또한 KT가 ‘쇼옴니아’란 명칭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삼성의 이러한 보복에 KT는 국내에서 제조되는 스마트폰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IT업계에서는 삼성의 KT에 대한 박해를 국내 휴대전화단말기와 통신사들간의 암묵적인 합의사항인 스마트폰 무시전략을 KT가 눈치 없이 깨고, 아이폰이라는 금단의 열매를 베어 문 탓이라고 했다. 삼성은 옴니아II 이후 약간 정신을 차리고 출시한 갤럭시를 몇 개월 이상 지난 다음에 KT에 출시했다.

아이폰 출시 이후 삼성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SKT는 아이폰 4 출시 후 결국 아이폰을 도입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마지막 보루였던 SKT가 먼저 손을 든 것이다. SKT는 아이폰을 무기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KT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은 국내 제조사와 통신사의 얌체 상술을 파괴하다!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휴대폰 시장에 준 영향은 크다.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단기적인 수익에만 매달리고, 휴대전화 제조과정에 개입하여 와이파이 기능을 제외하여 무료가 아닌 유료 무선인터넷 접속을 유도하여 과도한 데이터요금을 챙긴 것에 경종을 울렸으며, 통신사 수익을 떨어뜨리는 기능을 제외하여 해외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에 비해 스펙다운 논란이 꾸준히 지속된 부분을 시정하도록 만들었다.

애플의 아이폰은 본격적인 와이파이 시대를 열어 휴대폰을 통한 인터넷접속이라는 시대를 열었다. 또한 본격적인 GPS탑재로 네비게이션이 휴대폰의 큰 화면으로 들어왔고, MP3가 휴대폰 안으로 들어왔으며, 카메라 화소수의 성능 업그레이드로 사회 전반에 대대적인 혁명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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