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의 감성스토리]<총각 김치>

  • Editor. 김도형 작가
  • 입력 2017.06.29 23:58
  • 수정 2017.08.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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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작가
김도형 작가
아버님께서는 날 도형이라고 부른다.
23년전 당신의 귀한 딸을 2인분 만들어놨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라고 
시건방을 떨던 내게 사위도 자식이라면서
가슴에 품겠다는 말씀과 함께 바로 내이름을 부르셨고
지금도 전화라도 드리면 
"허허 도형아 잘지내쟈? 날 더분데 건강 잘 챙기고 알았제?" 이렇게 내 걱정을 먼저 하신다
 
못난 아들이다
아버님은 하시던 세탁소를 정리하시고 장유에 이사 가신후 지금 아파트 경비반장을 하고 계신다.
경남 장유도 더위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네인데
이 한여름 선풍기 한대로 무더위와 대결을 하시고 계실것이 뻔하다
그러나 난 당연한 듯 아버님의 정이 가득한 인사를
꼬박꼬박 받아먹었으니 이렇게 못난 아들이 천하에 또 있을까?
 
 
강북의 모 아파트에서 말도 안되는 이유로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한다는 공고를 붙혔다 한다
5가지 이유를 적어 놓았던데 아파트관리비가 오른다는 것이 다른 모든 이유보다도 더 괘씸했다
못난 이웃이요 나쁜 심성이며 참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그 아파트의 한 주민이 이에 맞서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일 그분들의 일터에 지금까지 에어컨 하나 없었다는게 더 창피한일이라며 설치를 찬성하는 글을 붙였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인간이길 포기하지 말라' 라는 
단호한 그의 꾸짖음이 내게도 죄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나의 아버님이 꼭 경비일을 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손톱만큼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우리의 전통도 아닐 것 이며 습성도 아닐 것 은 분명하다
내가 아는 우리나라는 배려와 인정이 넘치는 나라였음이 분명했다
그 옛날 도둑이 들어 가져갈 쌀을 따로 보관하던
멋진 인심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어느 시점부터 우리의 사회는 이토록 '잔인한 똑똑함'을
가치관으로 삼게 되었는지 참으로 아쉽고 개탄스럽다
그리고 실제로 똑똑한 척 하는 이들은 우매하기가 그지 없을때가 많다
 
나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이기심을 부린적이 없었나 반성하게 된다.
이일이 내게 이득인가 손해인가를 먼저 따져보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지는 않는가 되돌아도 본다
살다보면 때론 손해도 보고 이득을 보고 그럴때가 있다
손해를 보는것은 하다못해 동정이라는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욕심쟁이의 이득은 필경에는 삿대질을 초래하기 일쑤인 것을 우린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이 채 내리기도 전에 밀치며 전철안 빈자리를 찿아 가는 사람
자신이 서있는데 버스가 조금 앞으로 가서 정차했다고 화를 내는 사람
돌아가는것 같다며 우산으로 택시기사 뒤통수를 콕콕 찍은 사람(창피하지만 아는 후배였었던...)
작은 평수 아파트 단지와 울타리를 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넓은 집 사는 사람
비싼 외제차를 몰고 가다가 자신의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고 기어코 보복운전을 하고 멱살잡이 까지 하는 사람
 
난 이런 이들을 '인간적 적폐' 라고 생각한다.
배려와 상생은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체득해야 할 것이고 사람으로서의 기본 소양인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유행어를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여도 돼! 조금 손해 보며 살지 뭐' 이런 여유와 인심이
이 사회에 가득하길 소망한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직접 기른 총각무로 담그신 김치가 며칠 전 도착했고 마침 알맞게 익었다 
감사의 마음으로 먹어야겠다.
때때로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보내주시는 이 총각김치는 사실...내겐 막걸리 안주일 때가 많다
오늘은 막걸리에 취해 오랜만에 아버님께 전화해서
"도형아! 허허!" 하시는 그 인자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나도 참...못된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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