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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감성스토리]<소녀>
김도형 작가

나는 87년도에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방위복무를 하게됩니다
수송사령부 예하부대 영등포 TMO란곳이었지요
당시 영등포역은 신 역사 건축 중이었고
그래서 역 주변은 상당히 어수선 했었지요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노숙인들로 우리 TMO사무실앞은 그야말로 장사진 이었습니다

노숙인들도 나름 서열이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구걸을 하면 소주, 과자 등을 사서 고참에게 상납도 하더군요

그 노숙인중에 누가봐도 병색이 짙은 남자가 한명 있었는데 그 남자에겐 초등학교 일학년 정도의 딸이 있었지요

노숙인 서열로 치면 신입에 불과한 이 남자는
어린나이에 거리로 나 앉아 세상의 고달픔을 일찍 알아버린 당찬 딸덕에
그나마 고참 노숙인의 폭력 이라던가 술주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어요

조그만 계집애가 여간 사나운게 아니어서
제 아빠를 조금만 건드리려고 해도 쌍욕에 물어뜯기 까지
제 아빠를 보호하려는 본능적이다시피 한 행동에 다른 노숙인들이 잘 건드리지 않았던거지요

노숙인의 하루일과는 매일이 같았어요
오백원, 천원 구걸해서 깡소주 사마시고 자기들끼리 악다구니 하던가 한쪽 구석에 죽은듯 누워자던가

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건 세상의 멸시도 가진 돈 없는것도 아니었지요
그건 바로 겨울 추위 였어요
근처에 마리아의 집이라는 노숙인 숙소도 있었지만 담배와 술을 못하게 하니 추운겨울날도 이들은 보통 술기운으로 노숙을 택했지요

그남자의 병은 점점 깊어져만갔고
계집아이의 성격도 점점 거칠어져만 가는게 눈에 보이더군요

우리 TMO사무실 앞은 이들에게 은근 명당자리 였던것이 구석쪽이라 바람이 안불었고 사무실 안의 온기가 제법 문밖으로 빠져나가 자정이후 이 자리를 노리는 노숙인들이 꽤 많았어요
심지어 이자리 때문에 주먹다짐도 벌어지곤 했지요

1987년 겨울
그날 새벽은 내인생에서 참으로 잊지 못할 날중에 하루가 되었어요
잠겨진 사무실 문밖에서 우는소리가 계속 나는거였어요

당시 나는 야간 근무조였기에
서류정리를 하다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밖으로 나가보았어요
시간은 새벽두시를 훌쩍 넘어간 때였는데
그 아이가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있더군요
아이 옆에는 박스를 깔고 몸엔 신문지를 덮은 그 남자가 누워있었지요
아이는 아빠를 계속 흔들면서 울며 말하고 있었어요

"아빠 일어나.... 아빠 일어나.... "

남자는 싸늘하게 식은채로 채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죽어있었어요
아이는 이것이 기나긴, 어쩌면 영원한 이별인것을 알고 있는 듯 울음소리에 힘이 없었지요

내 신고로 역직원과 경찰관이 오고
사건은 그렇게 노숙자 동사사건으로 수습되었지요

노숙인들도 의리는 있었던걸까요?
그남자의 마지막 며칠은 그 명당자리를 계속 양보해 주었던거였어요
그들이 해줄 수 있었던 최선의 지킴이었던거였죠

그 흰 새벽에 난 군대라면 군대인 TMO사무실에서
소주를 마셔야했어요
당직사관이 보고도 아무 말을 안하더군요

그 아이와 죽어간 그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위치도, 능력도 없었지만 그 서럽고 보잘것없는 죽음이
꼭 내 탓인것만 같아 쓴 소주로 먹먹한 가슴을 달래야했지요



그 소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가슴속에 그 참혹한 아픔을 품고서....
지켜줄 수도 없었을 테지만, 지켜주지 못했다라고 자꾸 반성하게 되는 소녀와 소녀의 아빠의 삶이 뜬금없이 자주 생각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과 우리이웃이 참혹하게 희생된 세월호 사건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해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서....

세월호 사건은 꿈과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 원인인 사건인데 단지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고 다 해결이라도 된듯 잊혀져 가는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게 다가옵니다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침몰해 있음을 우리는 자각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는 제대로 아는것도 없으면서
지겹다, 그만 잊을때도 되지 않았나, 심지어 시체장사한다, 세월호 사건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려한다 등등 상식을 벗어난 삐뚤어진 시각의 민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가 존재합니다.
충청도의원이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설치류 즉 쥐에 비교한 것도 이런 맥락에 닿아 있습니다.

이런 이기적사고가 남아 있는한
거리에선 소녀가 계속 울것이고
여기저기에선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을건 자명합니다

올바르게 산다는건...
아마도 다른이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척 더운 날씨입니다
나의 더위가 남의 더위보다 덜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볕을 피하지도 못하는 삶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눔이며 배려이며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김도형 작가  thenews749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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