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의 감성스토리]알림의 방식

  • Editor. 김도형 작가
  • 입력 2017.08.10 10:59
  • 수정 2017.08.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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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작가
김도형 작가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워낙 조용한 주택가라서 나를 깨우기 위한 알람이 이웃도 깨울까봐 황급히 일어나 꺼야합니다
다섯시 이십분 이른 아침이 각성하지 못한 육체를 무겁게 합니다만 ‘십분만 더’ 를 실행했다간 자칫 지각을 면할 수 없기에 애써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오늘의 첫 알림입니다

단골 편의점에서 캔커피와 담배를 삽니다
밤을 꼬박 지새우며 일을 했을 알바는 내가 피우는 담배를 알고있습니다
어떨때는 담배가 많이 남아 안사려고 하는데도 쓱 내밀어서 그냥 사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만의 친근감의 표현이겠지요
카드로 계산을 마치자 문자가 옵니다
결제금액과 장소, 시간이 뜹니다
오늘의 두번째 알림입니다

버스를 기다립니다
전광판에 오분후 내가 탈 버스가 올거라고 알려주는
빨간색 숫자가 보입니다
이 세번째 알림은 사실 내겐 그닥 필요친 않습니다
그 알림이 없어도 버스는 제시간에 올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오전 여섯시도 안된 시각, 차가 밀리지 않기에
이 시간은 한적한, 여유로운 기다림을 가능케 합니다

버스는 매 정거장마다 계속 안내방송을 합니다
타고 내리며 사람들은 그 알림에 반응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스마트폰 화면속 뉴스로 눈을 돌립니다
수도 없이 많은 알림과 주장과 홍보가 넘쳐납니다

우리는 단 하루동안 얼마나 많은 알림을 만나게 될까요?
알린다는것은 크게 두가지 목적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정의입니다
잘못된 것을 알리고 바로 잡음을 위함이 알림의 목적중에 아마도 제일 중요한 가치일것입니다

두번째는 경제입니다
알림, 즉 홍보를 통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만납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알림의 기능입니다

난 경제에 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그 흔한 주식 한번 안해봤고 재테크란 말을 처음들었을때 무슨 세제 이름인가 할 정도였기에 경제적인 측면의 알림의 기능에 대해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알림이 사회적 정의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정의부터 이야기해 봅니다

내가 알람을 맞추고 그 소리에 반응하며 지각을 피하는것은 내 자신이 세운 정시 출근이란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소리의 형태인 알림은 소중한 행위가 되는것이기도 합니다
보행신호가 바뀌는것도 좌회전 신호가 깜박이는것도
질서유지라는 정의를 위한 알림일것입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확대해봅니다
우린 뉴스라는 매체를 통해 여러가지 알림을 받습니다
각종 휴대용기기들이 발전한 요즘 뉴스는 우리주위에 차고도 넘칩니다

버스에 흔들리며 그 뉴스들을 훑어보다가
두가지 알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광주의 기자들이 절필을 선언했던 시국선언문을 봅니다
그순간 알림은 꼭 기쁜 소식만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고 알리는 자들의 그 시절 애통한 절규에 그만 먹먹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간악한 영혼의 행동이 알림으로 뜹니다
택시 운전자라는 영화의 관계자들을 고발하겠다는
추악한 행동이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알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의 알림은 정의를 실현코자 노력했지만
무력과 권력앞에 무릎 꿇어야만 했던 처절한 외침이었고 다른 하나는 알리고자함이 아닌 숨기고자하는 그릇된 욕망인것입니다

알린다는 것의 행동양식은 같으나 그 안의 본질은 이렇게나 틀립니다
알리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의 대결을 보는듯하여
종일 착잡한 마음이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를 알리고자 하는 이는 필연적으로 도덕적인 올바름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거짓을 알리는 이들을 보아왔습니다
진실을 감추고 왜곡시키는 자들도 보이고 심지어 이것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잘못을, 거짓을 알리는 자들에 의하여 우린 심지어 생명까지 잃었고 그 거짓된 알림에 세뇌되다시피 하여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 편협하고 삐뚤어진 사람들도 참아내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알리는 자의 건강성은 지나치지 않을것이 이것에 있습니다
나는 기자로 대표되는 알리는 자와 뉴스로 상징되는 진실에 스마트폰 알람같은 정직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알람은 최소한 거짓된 시간을 알려주진 않습니다



방금 또 알람이 울렸습니다
퇴근시간을 알려줍니다
친구와 시원한 맥주 한잔 하자는 약속이 저녁에 기다립니다
재미있는건 친구가 내게 무언가 '알려'줄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쓰잘데기없는 '알림'이라도 들어주어야할 의무가 내겐 있습니다 정치에 손톱만큼도 관심없다는 이 현실회피주의자를
작년 겨울 반강제로 광화문에 끌고나간 전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만의 시민이 뜨거운 가슴으로 '알리는것'을 보고
그 친구는 그 겨울의 광화문 포장마차 한 켠에서 소리없이 소주잔을 비웠습니다



놀라웁게도 알림은 그 순간 거짓일지라도 스스로 정화되는 존재입니다
무언가를 감추고 거짓을 말해도 그 알림은 스스로 시간이 지난후 그 잘못됨을 고백하고 맙니다

모든 알리는것에 신중해야함이며 오로지 진실이 본질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1980년의 그 기자들이 하늘을 부끄러워하며 절필을 선언한것은 그들이 단 한줄도 싣지 못했던것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자리를 빌어 시대의 아픈 흔적인 그분들의 그 기사 사진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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