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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감성스토리]세아 이야기
김도형 작가

소녀가 우리집에 온것은
한참 더울 때 였어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서,
아니 안기다시피 걸어오는
소녀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고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어요

뇌성마비1급 장애․․․․

나보다 한살어린 소녀는
태어날 때부터 제대로 서지도 못했으며
안녕이라는 인사 한마디를 하는데
온힘을 다 써야하는 삶을 살았지요

할아버지의 처남․․․․ 그러니까 할머니의
오빠 되시는 분의 손녀딸 이었어요

"이만저만해서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낼거다"

소녀는 방학을 맞이한 우리 남매와
한달여를 같이 보내며 비좁은 집에서
우릴 조금은 불편하게 했어요

밥도 먹여 줘야했고
여동생들은 화장실도 같이 가주어야 했지요

그러나 소녀는 참 맑은 눈을 가졌더랬어요

말은 잘하지 않았지만 같이 놀때면
무엇이 그리 좋은지 참 잘웃기도 했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 입으로
오빠라 부르며 나를 잘따르기도 했지요

그러나 사실 앉아있는것 조차도 힘겨워하는
소녀가 할 수 있는것은
좁은방에 누워 이웃집 지붕만 보이는 작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 하루의 대부분
이었지요

그런 소녀에게 연민이 일었지요
그래서 과감히 집안 어른들이 안 계신 틈을 타서 나와 여동생들은 소녀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를 가는 모험을 감행해요

보통일이 아니었지요
우린 소녀를 안기도하고 업기도 하고
100미터거리 놀이터를 20분이 더 걸려 도착했어요

놀이터의 많은 친구들은 소녀를 둘러싸고
같이 놀아 주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소녀는 아이가 되었어요
편견도 없었고 아이들의 장애아에 대한 호기심도 일순간 사라지고 어떤놀이를 하던
소녀를 배려하며 즐겁게 놀았지요

집에 돌아가서 많이 혼났더랬죠
그래도 빨갛게 상기된 소녀의 볼이 오늘 너무나 즐거웠다는 표현인걸 알았기에 마음은 뿌듯했었지요

한달후 소녀의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고
택시를 타고 소녀는 떠났어요

택시 창문안 두꺼운 안경너머로 소녀는 깊은 눈빛을 내게 보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듯 했지요

그리고 몇년이 흐른후 내가 그 소녀를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던 어느날
위암으로 투병중이시던 할아버지께서
꿈 이야기를 하셨어요

"꿈에 얼마전에 죽은 세아가 나오드라․․․․ "

소녀의 이름은 세아였고
그렇게 짧고도 힘겨운 삶을 마감했던 거였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도 며칠뒤 인고의 삶을
내려놓으셨어요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세아는 그렇게라도
짧은 생의 추억들에 인사를 하러왔던 걸까요?
하늘나라 한켠에서 소녀는 할아버지를
반겨 주었을까요?
그리고 그곳은 아무런 편견이 없는 정말 천국일까요?



뉴스에서 재활기관을 못짓게 하려는 극심한 지역 이기주의를 보며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의 삼육재활원이란곳에 치료를 받으러 왔었던 세아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삼육재활원도 그 지역의 재개발로 다른 동네로 옮겨갔을때 그 지역주민의 극심한 반대에 홍역을 치루게 됩니다

그때 세아와 같이 놀아주었던 아이들은
단 하나의 편견도, 이기심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배려하고 더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걸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의 손해와 나의 불편은 솔직히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러나 사회에 꼭 필요한 시설을 이렇게 반대만 한다면
세상이 삭막해서 어디 살맛이나 나겠습니까?
내가 조금 불편해도, 금전적으로 조금 손해가 있다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감히 단언하건데 이런 이기심은 정신적 장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배려, 상생, 소통, 화합 이 덕목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으로 이 가치들은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세아는 내게 배려의 기쁨을 가르쳐주고 간
참 사랑스런 소녀였습니다

노부호 기자  thenews08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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