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의 감성스토리]난 술이 좋다

  • Editor. 김도형 작가
  • 입력 2017.10.11 14:15
  • 수정 2017.10.1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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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작가
김도형 작가

12대 장손으로 태어난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음복주로 술을 배웠다
주먹만한 녀석이 술에 취해 홍알대는 모습이 웃겨서 더 먹인듯하다

엄청나진 않지만 주량도 제법된다
술 마시면 지갑을 잘 여는 것 외엔 특이한 술버릇도 없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마르지 않는 지갑 이었다

자랑할 것 한가지는 난 오늘 마셔야할 나의 마지막잔을 안다
그 마지막 잔이 비워지면... 집에 간다

페친의 담벼락에 최고급 사케와 함께하는
불금의 사진이 올라온다

땡긴다

쌀로 빚은 일본 정통주 사케는
쌀을 얼마나 깍아내었는가로(도정)
그 급이 나뉜다

일본인들도 비싸서 자주 못마신다는 쿠보타 만주부터 마사무네라는 서민주까지 일본은 각 지방마다, 또는 집안 대대로 전승되어진
사케의 종류가 셀 수 없으리만큼,
가히 사케의 천국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점령지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그닥 부유층은 아니었을터라 그들의 제삿상에 올린 술이 바로 서민주 마사무네였고
이를 따라한 친일파들이 생겨났는데
얼마되지 않아 유행처럼 한국인들 사이에
소위 정종이라 일컫는 마사무네 사케를 제사상에 올리게 되었던거였다

(마사무네는 무기용 칼을 만들던 군수회사였고 대규모 양조공장도 소유했는데 거기서 제조된 대표적인 술이 정종이다)
섬뜩한건 이 군도에 독립군의 목숨이 잘려 나갔다는
가슴 아픈 과거이다

우리에겐 치욕스런 역사를 가지기도, 그 청산하지 못한 일본강점기의 잔재가 여전한 술 사케는 일본에선 오사케라 부른다
술이 사케이니 술중에 으뜸이란 표현일테다

어릴적 일본 고베에서 내 인생의 첫 사케를 맛보았다
이자까야보다 더 작은 선술집에서
오사케 이치 꼬뿌를 따듯하게 해달라고 시켰더니 빨간 칠을 한 작은 나무 판위에 술이
철철 넘치게 따라서 내앞에 내놓았다

아... 은근히 피어오르는 향기에 먼저 취한다
알고보니 이 빨간 나무 받침대는 물속에 2년 이상 담가놓았던 침향목이란다

따듯한 술이 그 나무위에 떨어지고
증발해버리는 사케 몇방울에 향목의 깊은 향이 어울리어 사람... 잡는다

일본인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전갱이 회 한점에 한모금 사케를 마신다

사께는 홀짝 마셔버리는 술이 아니다
입안에 넣고 최소 10초간 음미해야 그 참맛을 알수있다

그윽한 향취와 부드러운 맛은 쌀로 빚은 술의 절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술이 어디 사케 뿐이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은 단연코
한국 전통주이다
잘 아이다시피 일본강점기에 한국인의 혼을 말살하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일반인들의 주류제조금지를 시행하는데 이때에 각 가문마다 전해져 내려오던 그 비법중의 비법으로 빚어진 전통주가 상당수 사라져갔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래서 일본의 제국주의와 극우파, 그리고 친일파를 싫어한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입으로 며느리에게 전해준 몇몇 전통주가 남았는데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바로 진도 홍주이다

진도 홍주
진도는 내가 태어난곳도, 친척이 살던곳도, 내 목숨보다 소중한 지인이 살았던곳도 아니건만 내겐 고향 같은 곳이다

장사하러 몇번 들렀을 뿐인 섬
그러나 진도에는 내마음속 고향이 있고 충성스런 진도견이 있고 이유 없이 스러져간 아이들을 기리는 노란 리본으로 수놓은 팽목항도 있다
진도는 사람들의 마음속의 섬이며 애닯픈 영혼의 섬이다

아 술 땡긴다

진도홍주를 처음 맛보고 깜짝 놀랐다
그 높은 도수에도 놀랐거니와 그 어여쁜 선홍빛에도 놀랐다

난 어여쁜 홍주의 피부색에 이 술은 필시 꽃잎을 넣었을거라고 짐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국화꽃잎을 넣어서 만들었다고 지인들에게 뻥을 치기도 했었다

홍주는 쌀로 빚는 증류주이며 증류시에 지초라는 산삼에 버금가는 효능의 약초를 넣는데 이 지초가 선홍빛을 내는 이유였다

홍주는 40도의 강한 술이다
약초 내음을 맡을 겨를도 없이 식도를 자극하며 내려간다

그런데
홍주 한잔이 온전히 삼켜 지고나면
진도아리랑이 절로 부르고 싶어지고
성웅 이순신 장군의 기개가 갑자기 내 어깨에 얹혀진다

진도 홍주는 단번에 마셔도 좋고
천천히 마셔도 좋다
여러가지 음료를 섞어 마셔도 좋다

어떻게 마시든 홍주속의 단단한 기개와
단아한 기품은 진정 천하제일이 아닐 수 없다
술은 인간이 빚은게 아니라 신이 내려준 선물이란게
진도 홍주 때문에 증명된다

소망한다
명절 차례상에 더이상 정종이 아니라
새로이 개발되고 있고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의 멋진 술들이 올라가지기를
이것은 지나친 민족주의도가 아니며 시대의 아픔을 바로 알고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적폐청산 이라는것은 정치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케를 좋아하는 것, 우리 전통주를 좋아하는 것, 다른 술을 좋아하는 것들은 지극히 개인적취향이겠으나
술한잔 이라도 바로 알고 마시는것, 이런 소소한것들이 바꿔질때 이 사회엔 진정한 적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주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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