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의 감성스토리] <칼맞춤>

  • Editor. 김도형 작가
  • 입력 2017.11.02 23:26
  • 수정 2017.11.0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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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작가
김도형 작가

9호선 열차가 고속터미널역에 정차한다
환승을 위해 내려야하기에 출입문 앞에 섰다

서행하던 기차의 문에 붙은 창문이 역사의 스크린도어 앞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드디어 멈추는 열차(기차라고 했다가 열차라고 했다가 하는것은 열차라고만 쓰면 기차가 맘이 상할것 같고 기차라고만 쓰면 열차가 삐뚤어질테닷! 이럴까봐여서... 전철, 지하철도 같은 맥락으로 혼용하는 난 극소심일까? 오랜만에 글이 샜다 즐겁다)

오오!?
스크린도어의 중앙부분과 기차 출입문이 정확히 일치한다!
한번도, 단 한번도 내게 허락되어지지 않았던 칼맞춤의 광경이 내 코앞에서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기관사는 이순간 정확한 자신의 칼맞춤 실력에 자긍심을 느끼고 있을까?
환승역임을 알리는 기관사의 생목소리가 유난히 자신 있게 들리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심심하던 차에 이것저것 생각꺼리를 제공한 기관사의 칼맞춤에 작은 감사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어긋남과 불일치, 비합리 등 칼마추어지지 않는것에 대해 너무 관대한건 아니었는가...
기차가 스크린도어에서 살짝 벗어난 정도는 실생활에 뭐 그리 대수 이겠는가만 절실하게 칼맞춤이 필요한 곳에서도 관대하지 않았나 싶다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가, 공무원 등에게는 칼맞춤의 도덕성과 사명감을 요구했어야 되었던게 맞다
검사가 수사방해를 하고, 민간인이 국정을 주물떡거리고, 안보란 미명하에 국정원은 조작질이나 하고...
이런 사태들은 기관사가 열차를 역과 역사이 어둠의 공간에 정지시키고 문을 여는것과 마찬가지로 황망하기가 그지없는 일이지 않은가?

이해와 용서, 배려의 가치가 자꾸만 작아져만 가는 시대에 이런말이 어울릴까 싶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럴수도 있겠지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겠지' 이런 무분별한 관용은 버려야 할때이다
관용이 불러온 것... 그것이 적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적폐청산이 잃어버린 칼맞춤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9호선 기관사분을 국회로 보내야하나
실없는 상상을 하는 평범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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