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부산 해기사라는 곳에서 2주간의 교육을 받고 싱가폴에 있는 한 선박을 향해 비행기를 타고 갔다
나의 개인물품보다는 그 선박에 전해줘야 할 짐이 더 많았지만 공짜티켓 이라는 달콤함은 가방하나 추가쯤이야 그까이꺼! 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내 첫 보직은 주방장보조였다
다른 선원들보다 두시간정도 먼저 기상해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장을 도와주고, 설거지며 잡다한 일들을 한 후 잠시 쉰다
점심을 또 준비하고 아침과 같은 일을 한 후 또 잠시 쉰다
저녁을 준비하고 점심과 같은 일을 한후 다음날 아침준비까지 쉬. . . 어야 하는데 선실의 전화기가 울린다
"나 선장인데 라면 하나 끓여서 탑브릿지로 가져와라"
읭?
지금 11시인데?
난 내일아침 5시에 기상인데?
명백한 내 개인시간인데?
선장도 손발은 있을텐데?
등등의 분노에 찬 의문문들은 이곳도 하나의 사회란 것과 다른이도 아닌 선장이 내린 오더란 것에 힘을 잃었고
난 김치까지 예쁘게 담아 라면을 끓여다 주었다
종종 난 배민브라더스가 되어 야식을 배달해야했고
소위 사관이라고 불리우던 고위선원들(선장, 기관장, 1등항해사 와 기관사, 그리고 통신장까지 4명)의 침대시트 빨래까지 해야 했다
이건 분명 내가 꿈꾸던 마도로스의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 하급? 선원들과 테이블에서 꼭 멀리 떨어져 앉아 식사하는 사관들의 모습은 참으로. . 아니꼬왔다
두달후 1급 갑판원이 귀국을 할 날이 다가왔고
난 라면대신 결심을 가슴에 안고 탑브릿지로 향했다
어딘가 뒤틀려있는 선박안의 갑질과 부당한 습속에 대한 항거를 하기위해서였다
"선장님 저 주방보조 안할랍니다
1갑판원 귀국하면 갑판원 시켜주세요
그리고 주방보조를 다시 뽑아서 보내달라고 하시죠?"
23살 어린 청년의 당찬 말에서 선장은 민주열사나 내뿜을듯한 기개를 느꼈었나보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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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갑판원이 귀국하고 새로온 주방보조는 성격이 남달랐다
남다른 정도가 아니라 마치 투견 같았다
내 선실과 바로붙어 있는 그의 선실에서 밤11시에 들려오는 고함소리가 그걸 증명했다
"내가 왜요? 지금 쉬니까 직접 끓여 드시든가!"
이날 선장은 분명 주방보조에게 졌다
민주열사의 필은 그가 나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난 왜 저렇게 하지못했나 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난 나대로 그는 그대로 다른 선원들은 만만찮은 새로온 주방보조에게 적응하면서 그들은 그들대로의 시간을 만족시키며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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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서 장교식당을 없앤다고 한다
대단히 상징적일 일이 될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저 장교식당을 없애는 것만으로 그 고집스럽고 답답한 위계질서라는 명목하에 자행되었던 군대내의 부당했던 상하관계가 바르게 돌아온다는것은 한참 요원한 일이 분명할 것이다
아직도 그들은 식탁 서너개 뒤쪽을 고집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걸 내가 왜 해야해? 라는 말은 부하들은 해도 되고 상급자는 해선 안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밖에 몰라라는 꼰대적 발상보다는 합리와 이성이 우선시되는 올바른 군대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해본다
참고로 내아들은 지금 해병대 일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