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의 감성스토리]<영자의 전성시대>

  • Editor. 김도형 작가
  • 입력 2018.05.10 09:47
  • 수정 2018.05.1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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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작가
김도형 작가
1986년도에 대학을 입학했다
요즘 청년들은 영화로나 어렴풋이 알 수 있을듯한 바로 그 격동의 시기였다
 
대학가는 연일 최루탄 연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젊은 영혼들은 나름대로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내겐 대학생이 되었다는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의 매일 행하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학교 정문앞 통나무라는 학사주점을 가는 것이다.
막걸리 주전자에 소주가 한 병 부어지고 그렇게 '쏘막'은 지갑이 가벼운 청춘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취기가 오르면 몸살을 앓아야 하는건 양은으로 된 막걸리잔 들이었다
젓가락 장단에 땡깡땡강 아프다고 소리를 쳐댔지만 그것은 차라리 즐거운 비명이었다
 
두만강 푸른물이 바람찬 흥남부두로 흐르고 소양강 처녀는 그 물줄기에 노를 저었으며 철사줄에 손이 묶인 미아리고개를 지나는 바람이 되어 천등산 박달재를 지나간다
낙동강 강바람에 남쪽나라에서는 진달래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쌩목으로 불러대던 트롯트의 끝자락 즈음엔 어김없이 민중가요나 구전가요가 흘러나왔다
 
그날도 선배들과의 농구 게임을 가뿐히 이기고 
우린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얼근하게 다가오는 막걸리 쉰내로 쩌든 자리에 앉자마자 순식간에 '쏘막' 한주전자가 동이나고 절차인듯 누군가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영자야~~내동생아~~"
 
술만 마셨다하면 어김없이 부르던 노래였는데 난 갑자기 울컥해지는 가슴을 숨길수가 없어서 화장실을 핑계로 밖으로 나갔다
왜였는지는 알수없는 시린 가슴때문에 그날은 폭음을 했고 선배와 친구에게 업혀서 근처 여인숙으로 갔다
 
 
외설적이고 육두문자가 난발하는 이노래가 이날 왜그리 구슬펐는지 알 수가 없는 세월이 흘러갔다
 
결혼을 하고 못난 남편의 돈벌이가 영 시원치 않아서였는지 아내는 갓난쟁이 아들을 업고 보험이라도 팔아보겠다고 일을 나섰다
그러나 며칠째 발품을 팔고도 영 계약건수는 신통치 않았으리라
 
급기야 내게 한숨과 함께 눈물을 보이던 아내의 얼굴에서 난 대학 초년생 때엔 알 수 없었던, 시리게 다가왔던 그 노래의 영자가 
바로 내 옆에 있었음을 소스라치게 깨달아야했다
 
영자는 아들을 업고 발품을 팔던 내 아내였고 삥땅을 막겠다고 주머니를 없앤 유니폼을 입어야 했던 버스 안내원이었고, 밤새워 돌아가던 미싱 앞에 앉아 있던 우리의 소녀들이었다.
 
새벽시장에 나가 시래기를 주워와 국을 끓여야 했던 할매였고
중동으로 돈벌러나간 노동자의 아낙네였으며 박봉의 월급으로 아이들을 대학까지 살뜰하게 보낸 억척의 아내였던 것이었다
 
우린 그 어리던 청춘의 나날 속에서 그 노래를 불렀었다
그 노랜 한 맺힌 망부가였으며 어두운 시절을 이겨 내야할 목적이었을 수도, 가진게 없어서 오로지 성실만이 살아가는 이유였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그래서 그 노래는 차라리 해학적이면서도 아파야만 했을것이었다
 
영자라는 고유명사는 여성형 이지만 그때의 나와 우리와, 사람들은 어쩌면 대부분이 영자였고 그것이 그 날의 내게 그렇게 서글프게 다가왔었을것이 분명했다
 
 
영자들의 전성시대가 왔다고 확신한다
육덕스러운 가사처럼 가진것도 없고 위선으로 가득찬 자존이지만 이제는 그 자조섞인 가사의 우리가 주인공으로 캐스팅 될 날이 다가옴을 절실히 느낀다
 
살아가려고, 살아가 지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영자들...
사람처럼 살고 싶어했던, 기본적인 인권을 갈망했던 영자들...
나의 노력에 정당하진 않아도 수긍할만한 댓가를 바랬던 영자들...
 
이제 이런 평범한 영자들의 전성시대가 다가온다고 난 확신한다
 
"영자야아~ 내동생아하~~몸 성히 성히 자알 있느냐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를 이 구전가요는 
극단적으로 희망가였다
이노래를 부르며 그토록 힘겹던 세월들을 버.티.어.낸. 영자들의 전성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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