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정규직전환은 임금차별과 승진유보의 꼼수

정규직은 준정규직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는 사고방식

  • Editor. 노부호 기자
  • 입력 2018.05.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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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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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노부호 기자]최근 우리 사회에 불평등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문제인 정부 또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기업은행도 정부의 이런 정책에 부응하여 '완전한 정규직 전환'을 이루겠다며 3,300명에 달하는 준정규직(무기계약직)을 지난3월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준정규직이 받던 낮은 임금은 그대로 두고 승급마저 수 년 동안 유보하기로 하면서 준정규직 직원은 물론 기존 정규직 직원들까지 '정부에 잘보이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규직 직원마저 "무책임과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난달 기업은행 전체 메일에는 시내 모 지점에 근무하는 정규직 직원 A 차장이 김도진 기업은행장에게 보내는 메일이 전송됐다. 메일에는 지난 3월 23일 자로 일괄 시행된 기업은행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담겨 있다.

A차장은 글을 시작하며 "경영진의 무책임, 노조 집행부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면서, "은행장님! 젊은 행원들이라고 이렇게 가볍게 대하시면 안됩니다"라고 질책했다.

그는 "급여는 그대로 두고 글씨만 6(급)에서 5(급)으로 바꾸면 처우 개선입니까"라고 물으며 "은행은 처우개선이라는 꼼수로 정부로부터 책임을 면했을지는 몰라도 직원들에게는 신뢰를 잃었습니다"라며 회사 정책에 실망한 직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글에는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준정규직은 물론 기존 정규직 직원들마저 불확실성과 앞으로 다가올 혼란으로 불안을 겪는다며 "노사는 잘했다는데 왜 우리 모두는 피해자 같습니까"라고 꼬집었다.

직원들이 이렇게 실망하고 분노하는 까닭은 지난달 23일 회사가 각 부점장에게 발송한 『준정규직의 처우개선 및 관련 내규 일부 개정』 시행공문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 공문에 따르면 회사는 준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일괄적으로 시행하면서, 추진 기본방향으로 「급여 변동 최소화」 그리고 「서열 역전 방지위한 호봉 승급 유예」 조항을 명시해 놨다.

즉, 준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은 시키지만 기존에 지급하던 급여액을 그대로 유지하고, 기존 정규직 직원보다 호봉이 높아지지 않도록 일정기간 호봉 승급을 중단하겠다는 뜻이다.

 30~40% 적은 임금에 맞춰 낮은 호봉 적용

기업은행은 이번에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그동안 준정규직에게 적용했던 6급을 없애고 정규직 직급인 5급을 적용키로 하는 등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급여 변동 최소화' 원칙에 따라 준정규직에게는 기존의 적은 급여에 맞춰 정규직보다 낮은 호봉을 줬다. 정규직 신입사원은 초임으로 5급 11호봉을 적용받는데 이번에 전환된 준정규직은 이보다 다섯 단계가 낮은 5급 6호봉에서 시작한다.

전환된 준정규직의 70~80%가 정규직 신입사원 이하의 호봉을 적용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심지어 10년 이상 근무한 준정규직 직원이 정규직 신입사원에 해당하는 호봉을 받아, 경력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급 11호봉을 받는 정규직 신입사원의 본봉은 월 140만원 수준인데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5급 6호봉을 받은 준정규직 사원은 1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6급이었던 준정규직은 5급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전환전처럼 30~40% 적은 급여를 계속 받게 된다. 직급수당 등을 포함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임금에 맞춰 경력을 깍아 내린 모양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준정규직 직원의 70%(전문 준정규직은 80%)가 정규직 신입사원 이하의 호봉을 받게됐다. 자료 : 기업은행 '준정규직의 처우개선' 시행 공문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준정규직 직원의 70%(전문 준정규직은 80%)가 정규직 신입사원 이하의 호봉을 받게됐다. 자료 : 기업은행 '준정규직의 처우개선' 시행 공문

 낮은 임금 그대로 적용하면서 승급까지 유예

또 회사는 '서열 역전 방지'를 위해 이번에 전환되는 준정규직은 호봉 승급을 몇 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6급과 5급의 구분이 없어지므로 기존 정규직 직원의 호봉이 높아질 때까지 전환된 준정규직의 호봉 상승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규정이 도입되면서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준정규직 직원은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6년까지 호봉이 오르지 않는다.

이 규정을 적용 받게된 준정규직 직원은 "이런 발상은 정규직은 언제나 준정규직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는 사고방식인데 이번에 회사가 이를 제도로 못박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회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존 정규직 직원과의 형평성을 감안하여 운영하겠다는 것"이라며 "승급유예 제도를 도입하여 기존 정규직 직원과의 호봉 역전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생각하는 '형평성'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앞으로도 기존 정규직 직원은 준정규직 보다 항상 직급과 급여가 높아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노조 "완전한 정규직 전환 이뤘다", 회사 "극히 일부의 불만일 뿐"

선택의 여지도 없는 일괄적인 정규직전환 추진으로 준정규직의 실망과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조합소식지에 "새 정부의 노동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논의했으며, 그 결과 완전한 정규직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동안 준정규직에게 적용됐던 업무제한이 폐지되고 전산 제한도 해제됐다"며 이를 위해 직무연수를 실시하겠다고 덧붙였다.

회사측도 전환에 따른 불만은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며 "이번 처우개선 취지는 차별없이 일하는 근무환경 구축"이라고 말했다. 또, "승진, 이동, 교육, 담당직무 등 모든 부문에서 정규직 직원과 동일하게 운영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동일한 업무를 주겠다는 회사의 방침에 준정규직 직원들은 터무니 없다는 반응이다. 30~40% 낮은 임금을 그대로 두고 승급까지 유보시키면서 업무는 정규직과 똑같이 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형평성에 어긋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측에, 업무가 같아지면 처우도 동일해지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회사측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준정규직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정규직 직원은 "앞으로는 모든 업무를 똑같이 할텐데 임금차별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함께 일을 해야할지 막막하다"며 "승급까지 유예 하게되면 내부 갈등만 부추기고 근무의욕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이번 기업은행의 준정규직 전환 과정을 바라보며 회사내에 준정규직 직원들을 대변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준정규직들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창구나 별도 노조가 있었으면 이러한 사태까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금융권 안팍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도, 이러한 문제까지 더 세심하게 들여다 보고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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