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경기 악화 속 가계·기업 부채 급증, 빚 폭탄 리스크 선제적 대비를

빚 폭탄 뇌관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방치하면 경기 회복 길은 더욱 요원해져

  • Editor. THE NEWS
  • 입력 2023.09.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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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THE NEWS ] 국내 경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유가·고금리·고환율의 3대 악재가 다시 짙어지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국가 경제 규모의 2.26배 수준으로 폭증했다. 지난 9월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2023년 9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가계와 기업이 진 부채의 합) 비율은 225.7%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분기(1∼3월) 말 224.5%보다 1.2%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역대 최고 수준이자 2020년 1분기 200%를 넘어선 후 13분기 연속 최대치를 경신한 상황이다. 부문별로는 가계 신용 비율이 101.7%로 1분기 수준을 유지했으나 기업 신용 비율은 124.1%로 전 분기 123.0% 대비 1.1%포인트 상승했다.

박근종 칼럼니스트
박근종 칼럼니스트

우선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1,862조 8,000억 원으로 지난 1분기 1,853조 3,000억 원보다 0.5%인 9조 5,000억 원이나 늘어났는데, 이는 주택담보대출 14조 1,000억 원이 증가세를 이끌었다. 이에 따라서 가계 신용 비율은 101.7%로 1분기 말 101.5% 비해 1.2%포인트 높아진 수치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1위는 스위스로 126.1%, 2위는 호주 109.9%, 3위는 캐나다 103.1%였다. 이는 지난 1분기 말 선진국 73.4%보다 크게 웃도는 수준이며 신흥국 평균 48.4%보다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실제로 통계를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 가계부채 규모가 다소 차이가 있는데, 한국은행은 가계 대출과 신용대출만 포함해 발표하고 있고, 국제결제은행(BIS)은 여기에 소규모 개인사업자와 파생금융상품 같은 다양한 대출을 추가하며, 한국경제연구원은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해 발표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 기업부채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908조 9,000억 원, 전체 기업 신용(대출 + 외상거래)은 2,705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기업부채마저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업 신용 비율은 124.1%로 전 분기보다 1.1%포인트 뛰었으며,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3,903개로 전체 기업(외부 감사 대상 비금융법인)의 15.5%에 달해 최근 5년 만에 가장 높은 비중이다. 이 중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낸 지 7년이 넘은 만성 한계 기업은 지난해 기준 903 개로 전체 한계기업의 23.1%에 해당한다. 이들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만 50조 원이 넘어 자칫 채무불이행이나 파산 위기에 내몰릴 ‘악성 좀비기업’들이 떠안은 빚이 이만큼 많다. 그동안 가계 신용 비율은 2019년 2분기 99.1%에서 같은해 3분기 100.5%로 100%를 돌파한 후 2020년 2분기 107.6%, 2021년 2분기 111.9%로 뛰었고, 지난해 2분기 117.7%를 기록한 후 1년새 6.4%포인트 오른 124.1%로 상승했다. 무더기 도산이 이어졌던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108.6%는 물론이고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99.6%보다 높아졌다.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며 민간 부문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부채 감축)에 나선 데 반해 우리 경제는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건너뛰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진통제를 놓듯 유동성을 공급하고 가계는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소비를 늘렸다. 부실 기업은 퇴출되지 못하고 정부의 유동성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해왔다. 한국은행은 “향후 3년간 가계부채는 정책 대응이 없다면 해마다 4∼6% 정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명목 GDP 성장률이 연간 4% 수준이라고 가정할 경우, 명목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내년부터 103% 수준까지 재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엄중 경고했다. 앞으로 빚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준엄한 적색 경고임이 분명하다. 최근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경기 비관론은 더욱 커졌다. 수출 부진과 유가 상승에 더해 높은 빚 부담으로 소비와 투자 여력이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과도한 빚이 경제에 부담을 주고 그로 인해 또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가계 및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1인당 빚은 연간 소득의 약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가계 및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차주의 올 2분기 소득대비부채비율(LTI)은 평균 300%였다고 한다. 2019년 4분기보다 무려 34%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 상반기(1∼6월)까지 저금리 기조가 유지된 데다 최근 대출규제 완화 등이 겹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채무 부담은 고령층이 더 컸지만 빚 증가 속도는 청년층이 가장 빨랐다. 특히 청년층은 주택 관련 가계대출을 급격히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올 2분기 청년층의 1인당 주택대출은 5,504만 원으로 2019년 말보다 35.4%나 증가했다. 청년층 취약차주(저소득 또는 저신용이면서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한 차주)의 연체율은 올 2분기 8.41%로 전 분기 대비 나머지 연령층 취약차주의 연체율 상승분(평균 0.27%포인트)보다 0.41%포인트나 높다.

한국은행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계 부채가 GDP의 80%를 넘어서고 고금리 상황이 계속되면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내수 소비를 줄여 경기침체가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 또 자금 배분이 왜곡돼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만 몰리면서 기업의 투자, 연구개발, 일자리 창출 등이 감소해 미래 경제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더 올리면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 위험성이 커질 우려가 있으므로 우선 주택 가격이 상승하리라는 기대감을 꺾고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신규 주택을 빠르게 공급할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하며, 원금과 이자를 합해 연간 소득의 40%를 넘어갈 수 없도록 차주 단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예외 적용을 최소화해 빚내는 일이 쉽지 않게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의 공급 관리, 분할상환 대출 비중 확대가 병행되어야 한다.

경영학의 구루(Guru)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라고 했다. 앞으로 대출 규제를 가일층 강화하고 옥석 가리기로 부실기업 퇴출 등 가계와 기업의 빚을 더 촘촘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최근 미국이 긴축 고삐를 옥죄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다시 넘어서는 등 기업의 경영 환경은 갈수록 험난해지는 추세다. 부채 급증이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야만 하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가계 부채 관리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없을 경우 현재 1,862조 8,000억 원인 가계 부채 규모는 2년 뒤 2,092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부채 증가율을 더 낮게 관리해 장기적으로 빚 부담을 줄이려는 입장이지만 실현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안이 아닐 수 없다. 빚 폭탄의 뇌관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이대로 방치하고 방기하면 경기 회복의 길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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