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현실로 닥친 ‘끈적한 인플레’, 비상한 각오로 선제 대응을

작황이 나쁜 농산물값 7.2% 인상, 정부 눈치만 보던 기업들도 줄줄이 가격 인상

  • Editor. THE NEWS
  • 입력 2023.10.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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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THE NEWS ] 지난달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3%대 상승을 이어가면서 5개월 만에 최고로 상승하며 상승률이 4%에 육박했다. 국제유가가 오르는 데다 기후 영향으로 인한 농축산물 가격 인상이 겹친 탓이다. 게다가 예기치 못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 전쟁의 무력 충돌로 금융시장이 ‘시계 제로’ 상황에 봉착했다. 이에 따라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물가가 안정될 것이란 정부 전망도 흔들리고 있다. 잠잠해지는 듯하다가도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는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박근종 칼럼니스트
박근종 칼럼니스트

통계청이 지난 10월 5일 발표한 ‘2023년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는 112.99(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상승했다. 올 9월 소비자물가는 전월보다 0.3%포인트 오른 수치다. 지난 4월 3.7% 이후 5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6.3%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해 들어서는 1월 5.2%를 시작으로 2월 4.8%, 3월 4.2%, 4월 3.7%, 5월 3.3%로 꾸준하게 하락하다 올해 6월 2.7%를 기록하고 7월 2.3%까지 상승 폭을 줄여 2021년 9월 이후 처음으로 2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다가 지난 8월 8월 3.4%에 이어 상승 폭을 더 키워 9월엔 3.7%까지 상승했다.

이렇듯이 하락하는가 싶던 물가가 또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고물가는 하반기 경기 반등의 뒷다리를 잡을 수 있어 당국의 고민이 크다. 한국은행의 금리 운신 폭도 그만큼 좁아졌다. 자주 구매하는 144개 주요 품목만으로 구성해 체감 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 상승률은 4.4%로 전월 3.9% 대비 0.5%포인트나 올라 더 심각하다. 제일 큰 이유는 국제유가 급등이다.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국제유가 급등을 더 부추기면서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10일(현지 시각) 기준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5.88달러에,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는 각각 87.69달러, 88.54달러에 거래됐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분쟁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 10월 6일과 비교하면 2거래일 만에 3~4% 올랐다.

작황이 나쁜 농산물값도 7.2% 올랐다. 정부 눈치만 보던 기업들은 더 이상 원자재, 인건비 상승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10월 11일 오비맥주는 이날부터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한다. 우유 가격도 이달 초부터 이미 3∼4%씩 인상됐다. 과자와 빵,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에 많이 사용되는 재료인 설탕 물가 상승률은 올해 7월 4.0%에서 8월 13.8%로 급등한 데 이어 지난달 더 올라 설탕 물가 상승으로 이를 활용한 가공식품 물가가 연쇄적으로 오르는 ‘슈거플레이션(Sugarflation │ 설탕 + 인플레이션)’ 우려도 제기됐다. 이번 달에는 원유(原乳) 가격도 L당 996원에서 1,084원으로 88원(8.8%) 인상에 따라 우유가 들어가는 빵, 과자, 아이스크림 가격 등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Milkflation │ 우유 + 물가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공요금까지 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 10월 7일부터 서울·인천·경기 지역은 지하철 기본요금이 8년 만에 기존 1,250원에서 1,400원으로 150원이나 올랐다. 소금 물가도 기록적인 수준을 보였다. 지난달 소금 물가 상승률은 17.3%로 지난해 8월 20.9% 이후 1년 1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전력은 연내에 전기요금 추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누적 부채가 200조 원을 넘는 상황에서 전기료 인상을 더는 연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제유가가 상승한 데다, ‘킹달러(달러 초강세) 현상’으로 인한 원화 가치가 떨어져 해외에서 사들어 오는 발전 연료 비용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보다 인플레에서 빨리 탈출한 것처럼 보이던 한국에 ‘2차 인플레 쇼크’가 닥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단기적인 인플레에는 정부의 가격 통제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질기도록 오래 이어지는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은 대응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물가 당국이 개별 업종, 기업에 가격 동결을 압박하는 ‘두더지 잡기’식 대응은 중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기요금, 유류세 인하 조치를 단계적으로 정상화해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개선하는 등 ‘고금리’가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 │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표준)’이 된 경제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월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날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에 의하면 한국의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2%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7월에 내놨던 2.4%에서 2.2%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하고, 올해 전망치는 종전과 같은 1.4%를 유지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중국의 경기 회복세, 고유가 등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내년에도 저조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게다가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 일본에 역전당할 것이 확실시된다. IMF가 전망한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2.9%로 3개월 전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중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주요국 성장률 전망치가 일제히 0.2∼0.4%포인트 하락한 가운데 한국 전망치 역시 2.4%에서 2.2%로 0.2%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반면 경기가 호조를 보이는 미국은 1.5%로 0.5%포인트 높아졌고, 일본은 1.0% 전망이 유지됐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IMF는 올해 한국 경제가 지난 7월에 발표한 전망치와 같이 1.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미국은 2.1%, 일본은 2.0%로 각각 0.3%포인트, 0.6%포인트 올려 잡았다. 이대로라면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 이후 25년 만에 한국의 성장률이 일본에 역전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골드만삭스 등 8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9%였다. IMF는 현재 세계 경제를 복합적인 상황(Stable but Slow)으로 평가했다. 코로나19 종식과 미국·스위스발(發) 금융 불안의 조기 해소로 상반기 안정적인 성장 흐름이 나타났지만, 중국 경기 침체와 제조업 부진이 이어지면서 점차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 모멘텀(Momentum)이 하락한 것은 지난 30년간 중국 특수에 취해 산업구조 조정을 등한시한 데다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과 공급망 재편 등으로 국제 경제 질서가 바뀌면서 ‘중국 수출과 반도체 산업’ 중심의 기존 성장 패러다임은 한계를 맞고 있다. ‘반도체 천수답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특단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을 피할 수 없다. 반도체의 기술 경쟁력도 더 키워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상품 수출 위주에서 탈피해 의료·관광 등 국내 서비스 산업에서 흑자를 낼 수 있도록 선진국형 무역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해 미국 통화 긴축을 부채질함으로써 국내는 장기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 증가로 실질소득이 더 감소하게 될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생산과 소비, 환율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준다. 정부는 10월부터는 물가 안정과 수출이 증가한다는 ‘상저하고(上底下高)’를 전망하고 있지만, 중동 변수가 돌발한 마당에 낙관론은 접고 비상한 각오로 선제 대응에 나서야만 한다. 게다가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까지 계속되는 경우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던 우리 경제는 활력을 잃으면서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저성장의 고착화로 갈 수도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든 규제 사슬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여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 등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초격차 기술 개발과 신성장 동력 점화를 위해 전방위 지원에 총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저성장 장기화의 늪에서 벗어나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으며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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