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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참전용사의 날’ 기념행사 거행
  • 박광희 터키 취재본부장
  • 승인 2018.09.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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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박광희 터키 취재본부장] 푸른 하늘 햇살 아래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는 9월 19일 터키 ‘참전용사의 날’ 행사가 거행되었다. 사이프러스 참전용사, 한국전쟁 참전용사 등 터키 내 현재 생존하는 참전용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이스탄불시 주관으로 기념 행사가 진행되었다.

터키 참전용사의 날 행사 <사진 박광희 터키취재본부장>

이날 참전용사의 날 기념행사에는 이스탄불 부주지사를 비롯하여 이스탄불 부시장, 국방사령부, 터키 참전용사 협회 이스탄불 실케지 지회, 터키 전사자 유가족 협회, 터키 전사자 미망인 협회, 터키 전사자 유가족 지원 재단 등 다양한 유관 단체에서 참가했다. 그리고 한국전 참전용사 생존자들 6분, 사이프러스 참전용사 다수, 그리고 참전용사 미망인들과 유가족들이 참석하였다.

기념사에서 연설한 터키 참전용사 협회 이스탄불 실케지 지회장 아흐멧 대령은 ‘터키는 전쟁이 많은 역사를 거쳤다. 근대사에서 겪은 수 많은 전쟁에서 많은 희생을 치뤘다. 우리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 그리고 친구들이다. 그들이 희생의 통해 얻은 것은 우리 나라와 더불어 저 멀리 형제국인 한국도 포함된다.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히 싸우는 민족이다”라고 희생자들의 용맹과 헌신을 상기시켰다.

터키에서의 ‘참전용사의 날’은 1921년부터 지켜왔다. 1921년은 오스만제국이 1919년 세계 1차 대전 패망 이후 현대 터키 공화국이 되는 과정에서 격변의 해이다. 바로 그리스와의 기로에 선 대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터키군이 에스키쉐히르와 큐타하에서 패하고 사카라야까지 후퇴한 것으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터키군은 새로 옮긴 수도 앙카라를 탈환하기 위해 전세를 가다듬고 1921 8월 13일 에스키쉐히르에서 사카라야까지 진격했다. 마지막 반격으로 승리만을 고대했다. 터키군은 적군의 군사수와 군수품이 월등히 많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2만명의 군인, 300포, 8만 8천개의 소총, 6천개 소형포, 그리고 전투기 수 대 등. 그러나 터키군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전투는 사카랴에서 1921년 8월 23일-9월 13일 동안 20여일 지속되었다. 결국 터키군이 승리했다. 그러나 터키군이 승리하며 얻은 피해는 적지 않았다. 전사자 5,713, 부상자 18,480, 포로 828, 실종 14,258으로 총 49,289명. 승리의 댓가는 당시 터키 상황으로보아 매우 컸다. 그러나 이 승리로 꺼져갔던 터키의 불씨가 일어났고, 지금의 터키 공화국의 발판이 되었다. 1921년 9월 19일은 터키인에 있어서 ‘참전용사의 날’을 깊이 기리는 의미있는 날이다.

1923년 터키 공화국 출범 이후 터키에서 참전용사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1) 해외 파병으로 최초이며 세계 평화를 위한 나토 회원국 가입의 조건이었던 1950-1953년 한국전쟁 참전이다. 4차례 2만 명(한국 정부는 3차 파병수 1만 5천 명만 인정)이 참전하였다. 2) 1974년 자국 관련 분쟁이었던 사이프러스 참전이다. 참전 수는59,751명이다. 현재 생존하는 참전용사로는 사이프러스 2만 여명, 한국전 참전용사 2천 5백 여명에 이른다. 특히 한국전 참전용사 생존자들의 나이는 85~90세 정도이다.

매년 9월 19일 참전용사의 날, 터키 81개 주 가운데 60여개 주에 있는 참전용사 협회의 각 지회에서 크고 작은 규모로 기념행사를 갖는다.

박광희 터키 취재본부장  thenews749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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